그것이 가해지는 대상의 가치를 더하는 노동이 있고, 그런 효과가 없는 노동이 있다. 앞의 것은 가치를 생산하므로 생산적 노동이라 부를 수 있고, 뒤의 것은 비생산적 노동이라 부를 수 있다. {매우 학식 있고 재기 있는 몇몇 프랑스 저자들은 이 말을 다른 뜻으로 써 왔다. 제4편 마지막 장에서 나는 그들의 용법이 부적절하다는 것을 보이려고 한다.} 그리하여 제조업 노동자의 노동은 대개 그가 가공하는 재료의 가치에 그 자신의 부양비와 고용주의 이윤의 가치를 더한다. 반대로 가사 하인의 노동은 아무것의 가치도 더하지 않는다. 제조업 노동자는 고용주에게서 임금을 선대받지만 실제로는 고용주에게 아무런 비용도 들게 하지 않는다. 그 임금의 가치는 대개 그의 노동이 가해진 대상의 향상된 가치 속에서 이윤과 함께 회수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사 하인의 부양비는 결코 회수되지 않는다. 사람은 많은 제조업 노동자를 고용함으로써 부유해지고, 많은 가사 하인을 부양함으로써 가난해진다. 그러나 뒤의 노동도 그 가치가 있으며, 앞의 노동과 마찬가지로 보수를 받을 만하다. 그러나 제조업 노동자의 노동은 어떤 특정 대상, 즉 판매 가능한 상품에 고정되고 실현되어, 그 노동이 끝난 뒤에도 적어도 얼마 동안은 지속된다. 그것은 말하자면 일정량의 노동이 축적되고 저장되어 필요하면 다른 기회에 쓰이도록 한 것이다. 그 대상, 혹은 같은 이야기지만 그 대상의 가격은 나중에 필요하면 원래 그것을 생산한 것과 같은 양의 노동을 움직일 수 있다. 반대로 가사 하인의 노동은 어떤 특정 대상이나 판매 가능한 상품에도 고정되거나 실현되지 않는다. 그의 용역은 대개 수행되는 바로 그 순간에 사라지며, 나중에 같은 양의 용역을 얻을 수 있는 가치의 흔적을 남기는 일이 드물다.
사회에서 가장 존경받는 계층 가운데 몇몇의 노동도 가사 하인의 노동과 마찬가지로 아무런 가치도 생산하지 않으며, 그 노동이 끝난 뒤에도 지속되고 나중에 같은 양의 노동을 얻을 수 있는 영구적인 대상이나 판매 가능한 상품에 고정되거나 실현되지 않는다. 예컨대 군주와 그 아래에서 봉사하는 사법과 군사의 모든 관리, 육군과 해군 전체는 비생산적 노동자이다. 그들은 공공의 하인이며, 다른 사람들의 근로의 연간 산출물의 일부로 부양된다. 그들의 용역은 아무리 명예롭고 유용하며 필요하더라도 나중에 같은 양의 용역을 얻을 수 있는 것을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는다. 올해 그들의 노동의 결과인 국가의 보호와 안전과 방위는 내년의 보호와 안전과 방위를 구매하지 못할 것이다. 같은 부류에 가장 엄숙하고 중요한 직업 몇몇과 가장 경박한 직업 몇몇도 포함되어야 한다. 성직자, 법률가, 의사, 온갖 종류의 문필가, 그리고 배우, 광대, 악사, 오페라 가수, 오페라 무용수 따위가 그러하다. 이들 가운데 가장 비천한 자의 노동도 다른 모든 종류의 노동을 규제하는 것과 똑같은 원리로 규제되는 일정한 가치를 지니며, 가장 고귀하고 유용한 자의 노동도 나중에 같은 양의 노동을 구매하거나 얻을 수 있는 것을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는다. 배우의 낭독, 웅변가의 연설, 악사의 곡조처럼, 그들 모두의 일은 생산되는 바로 그 순간에 사라진다.
생산적 노동자와 비생산적 노동자, 그리고 전혀 노동하지 않는 사람들은 모두 똑같이 나라의 토지와 노동의 연간 산출물로 부양된다. 이 산출물은 아무리 크더라도 결코 무한할 수 없으며 일정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어느 한 해에 그 가운데 더 작은 비율이 비생산적 일손을 부양하는 데 쓰이느냐 더 큰 비율이 쓰이느냐에 따라, 앞의 경우에는 더 많이, 뒤의 경우에는 더 적게 생산적 일손을 위해 남을 것이며, 이듬해의 산출물도 그에 따라 더 크거나 작을 것이다. 땅의 자생적 산물을 제외하면 연간 산출물 전체는 생산적 노동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모든 나라의 토지와 노동의 연간 산출물 전체는 의심할 여지 없이 궁극적으로 그 주민들의 소비를 공급하고 그들에게 수입을 얻게 하도록 정해져 있지만, 그것이 처음 땅에서나 생산적 노동자의 손에서 나올 때에는 자연히 두 부분으로 나뉜다. 그 가운데 하나는, 그리고 흔히 가장 큰 부분은, 우선 자본을 회수하는 데, 즉 자본에서 빠져나간 식량과 재료와 완제품을 갱신하는 데 쓰이도록 정해진다. 다른 하나는 이 자본의 소유자에게 그 자산의 이윤으로서, 혹은 다른 어떤 사람에게 그 토지의 지대로서 수입을 이루도록 정해진다. 그리하여 토지의 산출물 가운데 한 부분은 농업 경영자의 자본을 회수하고, 다른 부분은 그의 이윤과 지주의 지대를 지불하여, 이 자본의 소유자에게는 그 자산의 이윤으로서, 다른 어떤 사람에게는 그 토지의 지대로서 수입을 이룬다. 큰 제조소의 산출물도 마찬가지로 한 부분, 그것도 언제나 가장 큰 부분은 사업 경영자의 자본을 회수하고, 다른 부분은 그의 이윤을 지불하여 이 자본의 소유자에게 수입을 이룬다.
어느 나라의 토지와 노동의 연간 산출물 가운데 자본을 회수하는 부분은 결코 생산적 일손 말고는 다른 누구를 부양하는 데 직접 쓰이지 않는다. 그것은 생산적 노동의 임금만을 지불한다. 이윤으로서든 지대로서든 수입을 이루도록 직접 정해진 부분은 생산적 일손이든 비생산적 일손이든 가리지 않고 부양할 수 있다.
사람은 자기 자산 가운데 자본으로 쓰는 부분은 무엇이든 언제나 이윤과 함께 회수되기를 기대한다. 그러므로 그는 그것을 생산적 일손을 부양하는 데에만 쓰며, 그것은 그에게 자본의 기능을 한 뒤 그들에게 수입이 된다. 그가 그 가운데 어떤 부분을 어떤 종류의 비생산적 일손을 부양하는 데 쓸 때마다, 그 부분은 그 순간부터 그의 자본에서 빠져나와 당장의 소비를 위해 남겨 두는 자산에 들어간다.
비생산적 노동자와 전혀 노동하지 않는 사람들은 모두 수입으로 부양된다. 첫째, 연간 산출물 가운데 원래 토지의 지대나 자산의 이윤으로서 어떤 특정한 사람들에게 수입을 이루도록 정해진 부분으로, 혹은 둘째, 원래 자본을 회수하고 생산적 노동자만을 부양하도록 정해졌지만 그들의 손에 들어오면 그 가운데 필요한 생활 자료를 넘는 부분은 무엇이든 생산적 일손이든 비생산적 일손이든 가리지 않고 부양하는 데 쓰일 수 있는 부분으로 부양된다. 그리하여 대지주나 부유한 상인뿐만 아니라 보통 노동자조차 그 임금이 상당하다면 가사 하인을 둘 수 있다. 혹은 그는 때로 연극이나 인형극을 보러 가서 한 무리의 비생산적 노동자를 부양하는 데 자기 몫을 보탤 수도 있고, 세금을 내서 다른 무리, 즉 사실 더 명예롭고 유용하지만 똑같이 비생산적인 무리를 부양하는 데 도울 수도 있다. 그러나 원래 자본을 회수하도록 정해진 연간 산출물의 어떤 부분도 그것이 그 생산적 노동의 정량 전체, 즉 그것이 쓰인 방식으로 움직일 수 있었던 모든 노동을 움직이기 전에는 결코 비생산적 일손을 부양하는 쪽으로 향하지 않는다. 노동자는 그 임금의 어떤 부분을 이런 방식으로 쓰기 전에 일을 함으로써 그 임금을 벌었어야 한다. 또한 그 부분은 대개 작은 부분일 뿐이다. 그것은 그의 여분의 수입일 뿐이며, 생산적 노동자들은 그것을 많이 가지는 일이 드물다. 그러나 그들은 대개 얼마간은 가지고 있다. 그리고 세금 납부에서는 그 수가 많다는 것이 그 기여의 적음을 어느 정도 보상할 수 있다. 그러므로 어디서나 토지의 지대와 자산의 이윤이 비생산적 일손이 생활 자료를 얻는 주요 원천이다. 이것들은 그 소유자들이 대개 가장 많이 남길 수 있는 두 종류의 수입이다. 그것들은 생산적 일손이든 비생산적 일손이든 가리지 않고 부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들은 뒤의 것을 다소 편애하는 듯하다. 대영주의 지출은 대개 근면한 사람보다 한가한 사람을 더 많이 먹인다. 부유한 상인은 자기 자본으로는 근면한 사람만을 부양하지만, 자기 지출, 즉 자기 수입의 사용으로는 보통 대영주와 똑같은 종류의 사람들을 먹인다.
그러므로 생산적 일손과 비생산적 일손 사이의 비율은 모든 나라에서 연간 산출물 가운데 땅에서나 생산적 노동자의 손에서 나오자마자 자본을 회수하도록 정해진 부분과, 지대나 이윤으로서 수입을 이루도록 정해진 부분 사이의 비율에 크게 달려 있다. 이 비율은 부유한 나라와 가난한 나라에서 매우 다르다.
그리하여 현재 유럽의 부유한 나라들에서는 토지 산출물의 매우 큰 부분, 흔히 가장 큰 부분이 부유하고 독립적인 농업 경영자의 자본을 회수하도록 정해지고, 다른 부분은 그의 이윤과 지주의 지대를 지불하도록 정해진다. 그러나 옛날 봉건 정부가 지배하던 동안에는 산출물의 아주 작은 부분으로도 경작에 쓰인 자본을 회수하기에 충분했다. 그 자본은 보통 경작되지 않은 토지의 자생적 산출물로 전적으로 부양되어 그 자생적 산출물의 일부로 볼 수 있는 몇 마리의 비참한 가축으로 이루어졌다. 또한 그것은 대개 지주의 소유였으며 지주가 토지 점유자들에게 선대한 것이었다. 산출물의 나머지 전부도 엄밀히 말해 지주에게 속했다. 그의 토지의 지대로서든 이 보잘것없는 자본에 대한 이윤으로서든 그러했다. 토지 점유자들은 대개 예속민이었으며, 그 신체와 재산이 똑같이 지주의 소유였다. 예속민이 아닌 사람들은 임의 차지인(tenants at will)이었으며, 그들이 낸 지대는 흔히 명목상 면역지대를 조금 넘는 정도였지만 실제로는 토지 산출물 전체에 이르렀다. 그들의 영주는 언제든 평시에는 그들의 노동을, 전시에는 그들의 군역을 명령할 수 있었다. 그들은 영주의 저택에서 멀리 떨어져 살았지만, 그 저택에 사는 가신들과 똑같이 영주에게 종속되어 있었다. 그런데 토지 산출물 전체는 의심할 여지 없이 그것이 부양하는 모든 사람의 노동과 군역을 처분할 수 있는 사람에게 속한다. 현재의 유럽에서 지주의 몫은 토지 산출물 전체의 3분의 1을 넘는 일이 드물며, 때로는 4분의 1도 되지 않는다. 그러나 나라의 개량된 모든 지역에서 토지의 지대는 그 옛날 이래 세 배, 네 배가 되었으며, 연간 산출물의 이 3분의 1이나 4분의 1은 이전의 전체보다 서너 배 큰 듯하다. 개량의 진보 속에서 지대는 토지의 넓이에 비례해서는 늘어나지만 토지의 산출물에 비례해서는 줄어든다.
현재 유럽의 부유한 나라들에서는 상업과 제조업에 큰 자본이 쓰인다. 옛 상태에서는 그나마 이루어지던 작은 상업과 영위되던 몇 안 되는 소박하고 거친 제조업에 아주 작은 자본만 필요했다. 그러나 그것들은 매우 큰 이윤을 낳았음에 틀림없다. 이자율은 어디서도 10퍼센트보다 낮지 않았으며, 그 이윤은 이 높은 이자를 감당하기에 충분했음에 틀림없다. 현재 유럽의 개량된 지역에서 이자율은 어디서도 6퍼센트보다 높지 않으며, 가장 개량된 몇몇 지역에서는 4, 3, 2퍼센트까지 낮다. 주민의 수입 가운데 자산의 이윤에서 나오는 부분은 언제나 가난한 나라보다 부유한 나라에서 훨씬 크지만, 그것은 자산이 훨씬 크기 때문이다. 자산에 비하면 이윤은 대개 훨씬 적다.
그러므로 연간 산출물 가운데 땅에서나 생산적 노동자의 손에서 나오자마자 자본을 회수하도록 정해지는 부분은 가난한 나라보다 부유한 나라에서 훨씬 클 뿐만 아니라, 지대나 이윤으로서 수입을 이루도록 직접 정해지는 부분에 대해서도 훨씬 큰 비율을 지닌다. 생산적 노동을 부양하도록 정해진 기금은 앞의 나라에서 뒤의 나라에서보다 훨씬 클 뿐만 아니라, 생산적 일손이든 비생산적 일손이든 부양하는 데 쓰일 수 있지만 대개 뒤의 것을 편애하는 기금에 대해서도 훨씬 큰 비율을 지닌다.
이 여러 기금 사이의 비율은 모든 나라에서 주민의 근면이나 나태에 관한 일반적 성격을 반드시 결정한다. 우리가 조상들보다 더 근면한 것은 오늘날 근로를 부양하도록 정해진 기금이 나태를 부양하는 데 쓰이기 쉬운 기금에 비해 2, 3세기 전보다 훨씬 크기 때문이다. 우리 조상들은 근로에 대한 충분한 장려가 없어서 나태했다. 속담에도 있듯이 아무것도 없이 일하느니 아무것도 없이 노는 것이 낫다. 하층 계급 사람들이 주로 자본의 사용으로 부양되는 상업 도시와 제조업 도시에서는, 잉글랜드의 많은 도시와 네덜란드의 대부분 도시에서처럼 그들이 대체로 근면하고 착실하며 번창한다. 궁정이 상주하거나 때때로 머무는 것에 주로 의지하며 하층 계급 사람들이 주로 수입의 지출로 부양되는 도시에서는, 로마, 베르사유, 콩피에뉴, 퐁텐블로에서처럼 그들이 대체로 나태하고 방탕하며 가난하다. 루앙(Rouen)과 보르도(Bourdeaux)를 제외하면 프랑스의 고등법원 소재 도시들에는 상업이나 근로가 거의 없으며, 하층 계급 사람들은 주로 법원 구성원들과 그 앞에서 소송하러 오는 사람들의 지출로 부양되므로 대체로 나태하고 가난하다. 루앙과 보르도의 큰 상업은 전적으로 그 위치의 결과인 듯하다. 루앙은 외국에서든 프랑스의 해안 지방에서든 대도시 파리의 소비를 위해 들여오는 거의 모든 재화의 집산지일 수밖에 없다. 보르도는 마찬가지로 가론(Garronne)강과 그리로 흘러드는 강들의 기슭에서 자라는 포도주의 집산지인데, 그곳은 세계에서 가장 풍요로운 포도주 산지 가운데 하나이며 수출에 가장 알맞은, 즉 외국 국민의 입맛에 가장 잘 맞는 포도주를 생산하는 듯하다. 이런 유리한 위치는 자본에 큰 사용처를 제공함으로써 반드시 큰 자본을 끌어들이며, 이 자본의 사용이 그 두 도시의 근로의 원인이다. 프랑스의 다른 고등법원 소재 도시들에서는 그 자체의 소비를 공급하는 데 필요한 것, 즉 그곳에 쓰일 수 있는 최소한의 자본보다 조금 더 많은 자본이 쓰이는 듯하다. 파리, 마드리드, 빈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다. 그 세 도시 가운데 파리가 단연 가장 근면하지만, 파리 자체가 파리에 세워진 모든 제조업의 주된 시장이며, 그 자체의 소비가 그것이 영위하는 모든 상업의 주된 대상이다. 런던, 리스본, 코펜하겐은 아마 유럽에서 궁정이 상주하는 곳이면서 동시에 상업 도시, 즉 자기 소비뿐만 아니라 다른 도시와 나라의 소비를 위해서도 상업을 하는 도시로 볼 수 있는 유일한 세 도시일 것이다. 세 도시 모두 위치가 매우 유리하며, 자연히 먼 곳의 소비를 위해 정해진 재화의 큰 부분의 집산지가 되기에 알맞다. 큰 수입이 지출되는 도시에서는 그 도시의 소비를 공급하는 것 말고 다른 목적으로 자본을 유리하게 쓰기가, 하층 계급 사람들이 그런 자본의 사용에서 얻는 것 말고는 다른 부양 수단이 없는 도시에서보다 아마 더 어려울 것이다. 수입의 지출로 부양되는 사람들 대부분의 나태는 아마 자본의 사용으로 부양되어야 할 사람들의 근면을 타락시키며, 그곳에서 자본을 쓰는 것을 다른 곳에서보다 덜 유리하게 만들 것이다. 합병 이전에 에든버러에는 상업이나 근로가 거의 없었다. 스코틀랜드 의회가 더 이상 그곳에서 열리지 않게 되고, 그곳이 스코틀랜드의 주요 귀족과 신사층이 반드시 거주해야 하는 곳이 아니게 되자, 그곳은 얼마간의 상업과 근로가 있는 도시가 되었다. 그러나 그곳은 아직도 스코틀랜드의 주요 법원, 관세청과 소비세청 따위가 있는 곳이다. 그러므로 상당한 수입이 아직도 그곳에서 지출된다. 상업과 근로에서 그곳은 주민이 주로 자본의 사용으로 부양되는 글래스고에 훨씬 뒤진다. 때때로 관찰되었듯이, 제조업에서 상당한 진보를 이룬 큰 마을의 주민들이 어떤 대영주가 그 근방에 거처를 정한 결과 나태하고 가난해진 일도 있다.
그러므로 자본과 수입 사이의 비율이 어디서나 근로와 나태 사이의 비율을 규제하는 듯하다. 자본이 우세한 곳에서는 근로가 지배하고, 수입이 우세한 곳에서는 나태가 지배한다. 그러므로 자본의 모든 증가나 감소는 자연히 근로의 실질량, 생산적 일손의 수, 따라서 나라의 토지와 노동의 연간 산출물의 교환가치, 즉 그 모든 주민의 실질적인 부와 수입을 늘리거나 줄이는 경향이 있다.
자본은 절약으로 늘어나고 낭비와 실책으로 줄어든다.
사람이 자기 수입에서 절약하는 것은 무엇이든 자기 자본에 더해지며, 그는 그것을 스스로 추가적인 생산적 일손을 부양하는 데 쓰거나, 이자, 즉 이윤의 몫을 받고 다른 사람에게 빌려줌으로써 그 사람이 그렇게 할 수 있게 한다. 개인의 자본이 그가 연간 수입이나 연간 소득에서 절약하는 것으로만 늘어날 수 있듯이, 그것을 이루는 모든 개인의 자본과 같은 사회의 자본도 같은 방식으로만 늘어날 수 있다.
자본 증가의 직접적인 원인은 근로가 아니라 절약이다. 사실 근로는 절약이 축적하는 대상을 제공한다. 그러나 근로가 무엇을 얻든 절약이 그것을 아끼고 쌓아 두지 않는다면 자본은 결코 더 커지지 않을 것이다.
절약은 생산적 일손을 부양하도록 정해진 기금을 늘림으로써, 그 노동이 가해지는 대상의 가치를 더하는 일손의 수를 늘리는 경향이 있다. 그러므로 그것은 나라의 토지와 노동의 연간 산출물의 교환가치를 늘리는 경향이 있다. 그것은 추가적인 양의 근로를 움직이며, 그 근로는 연간 산출물에 추가적인 가치를 준다.
해마다 절약되는 것은 해마다 지출되는 것과 똑같이 규칙적으로, 그리고 거의 같은 기간에 소비된다. 그러나 그것은 다른 부류의 사람들에 의해 소비된다. 부자가 해마다 지출하는 수입 부분은 대부분의 경우 한가한 손님과 가사 하인들이 소비하며, 그들은 그 소비에 대한 대가로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다. 그가 해마다 절약하는 부분은 이윤을 위해 즉시 자본으로 쓰이므로, 같은 방식으로 거의 같은 기간에 소비되지만 다른 부류의 사람들, 즉 자기 연간 소비의 가치를 이윤과 함께 재생산하는 노동자, 제조업 노동자, 장인들에 의해 소비된다. 그의 수입이 화폐로 지불된다고 가정하자. 그가 그 전부를 지출했다면, 그 전부로 구매할 수 있었던 식량과 의복과 거처는 앞의 부류의 사람들에게 분배되었을 것이다. 그 일부를 절약함으로써, 그 부분은 이윤을 위해 그 자신이나 다른 누군가에 의해 즉시 자본으로 쓰이므로, 그것으로 구매할 수 있는 식량과 의복과 거처는 반드시 뒤의 부류를 위해 남겨진다. 소비는 같지만 소비자가 다르다.
검소한 사람은 해마다 절약하는 것으로 이듬해에 추가적인 생산적 일손을 부양할 뿐만 아니라, 공공 작업장의 설립자처럼 말하자면 앞으로 모든 시대에 같은 수의 일손을 부양할 영구적인 기금을 세운다. 사실 이 기금의 영구적인 배정과 용도가 언제나 어떤 실정법이나 신탁권이나 영구 양도 증서로 보호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언제나 매우 강력한 원리, 즉 그 몫을 조금이라도 언젠가 가지게 될 모든 개인의 분명하고 명백한 이익에 의해 보호된다. 그 어떤 부분도 나중에 생산적 일손 말고 다른 누구를 부양하는 데 쓰인다면, 그렇게 그것을 본래의 용도에서 벗어나게 하는 사람에게 명백한 손실이 된다.
낭비자는 이런 식으로 그것을 본래의 용도에서 벗어나게 한다. 그는 지출을 소득 안으로 제한하지 않음으로써 자본을 잠식한다. 어떤 경건한 재단의 수입을 세속적인 목적에 유용하는 사람처럼, 그는 조상들의 검소함이 말하자면 근로의 부양에 바친 기금으로 나태의 임금을 지불한다. 생산적 노동을 고용하도록 정해진 기금을 줄임으로써 그는 자기에게 달린 한, 그것이 가해지는 대상에 가치를 더하는 노동의 양, 따라서 나라 전체의 토지와 노동의 연간 산출물의 가치, 즉 그 주민들의 실질적인 부와 수입을 반드시 줄인다. 어떤 사람들의 낭비가 다른 사람들의 검소함으로 보상되지 않는다면, 모든 낭비자의 처신은 근면한 자의 빵으로 한가한 자를 먹임으로써 자기 자신을 거지로 만들 뿐만 아니라 나라를 가난하게 만드는 경향을 지닐 것이다.
낭비자의 지출이 전적으로 국산품에 쓰이고 그 어떤 부분도 외국 상품에 쓰이지 않는다 하더라도, 사회의 생산적 기금에 미치는 그 효과는 여전히 같을 것이다. 해마다 여전히 생산적 일손을 부양했어야 할 일정량의 식량과 의복이 비생산적 일손을 부양하는 데 쓰일 것이다. 그러므로 해마다 여전히 나라의 토지와 노동의 연간 산출물의 가치가 그렇지 않았을 경우보다 얼마간 줄어들 것이다.
사실 이 지출은 외국 재화에 쓰이지 않고 금과 은의 수출을 일으키지 않으므로 이전과 같은 양의 화폐가 나라에 남을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렇게 비생산적 일손이 소비한 식량과 의복의 양이 생산적 일손에게 분배되었다면, 그들은 자기 소비의 가치 전체를 이윤과 함께 재생산했을 것이다. 이 경우에도 같은 양의 화폐가 똑같이 나라에 남았을 것이며, 게다가 같은 가치의 소비재가 재생산되었을 것이다. 하나의 가치 대신 두 개의 가치가 있었을 것이다.
게다가 연간 산출물의 가치가 줄어드는 나라에서는 같은 양의 화폐가 오래 남아 있을 수 없다. 화폐의 유일한 용도는 소비재를 유통시키는 것이다. 화폐를 통해 식량, 재료, 완제품이 사고팔리고 본래의 소비자에게 분배된다. 그러므로 어느 나라에서 해마다 쓰일 수 있는 화폐의 양은 그 안에서 해마다 유통되는 소비재의 가치에 의해 결정될 수밖에 없다. 이 소비재는 나라 자체의 토지와 노동의 직접적인 산출물이거나, 그 산출물의 일부로 구매한 무언가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그 가치는 그 산출물의 가치가 줄어듦에 따라 줄어들 수밖에 없으며, 그와 함께 그것을 유통시키는 데 쓰일 수 있는 화폐의 양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런 해마다의 산출물 감소로 해마다 국내 유통에서 밀려나는 화폐는 놀려 두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것을 소유한 사람의 이익은 그것이 쓰이기를 요구한다. 그러나 국내에서 쓸 곳이 없으므로, 그것은 모든 법률과 금지에도 불구하고 외국으로 보내져 국내에서 얼마간 쓸모 있을 소비재를 구매하는 데 쓰일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그 해마다의 수출은 얼마 동안 나라의 연간 소비에 그 자체의 연간 산출물의 가치 이상의 무언가를 계속 보탤 것이다. 번영하던 시절에 그 연간 산출물에서 절약되어 금과 은을 구매하는 데 쓰였던 것이 잠시 동안 역경 속에서 그 소비를 뒷받침하는 데 이바지할 것이다. 이 경우 금과 은의 수출은 나라의 쇠퇴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이며, 잠시 동안 그 쇠퇴의 비참함을 덜어 줄 수도 있다.
반대로 모든 나라에서 화폐의 양은 연간 산출물의 가치가 늘어남에 따라 자연히 늘어날 수밖에 없다. 사회 안에서 해마다 유통되는 소비재의 가치가 더 커지면 그것을 유통시키는 데 더 많은 양의 화폐가 필요할 것이다. 그러므로 늘어난 산출물의 일부는 자연히 나머지를 유통시키는 데 필요한 추가적인 양의 금과 은을 그것을 구할 수 있는 곳 어디서든 구매하는 데 쓰일 것이다. 이 경우 그 금속들의 증가는 공공 번영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일 것이다. 금과 은은 어디서나 같은 방식으로 구매된다. 그것을 광산에서 시장으로 가져오는 데 노동이나 자산이 쓰이는 모든 사람의 식량, 의복, 거처, 즉 그들의 수입과 부양비가 페루에서나 잉글랜드에서나 그것에 대해 지불되는 가격이다. 이 가격을 치를 수 있는 나라는 결코 오랫동안 필요한 양의 금속 없이 지내지 않을 것이며, 어떤 나라도 필요 없는 양을 오랫동안 보유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한 나라의 실질적인 부와 수입이 무엇으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하든, 즉 평이한 이성이 지시하는 듯이 그 토지와 노동의 연간 산출물의 가치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하든, 통속적인 편견이 가정하듯이 그 안에서 유통되는 귀금속의 양으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하든, 어느 쪽 견해로 보든 모든 낭비자는 공공의 적이고 모든 검소한 사람은 공공의 은인으로 보인다.
실책의 효과도 흔히 낭비의 효과와 같다. 농업, 광업, 어업, 상업, 제조업에서의 모든 무분별하고 실패한 사업은 같은 방식으로 생산적 노동을 부양하도록 정해진 기금을 줄이는 경향이 있다. 그런 모든 사업에서 자본은 생산적 일손에 의해서만 소비되지만, 그들이 무분별하게 쓰이기 때문에 자기 소비의 가치 전체를 재생산하지 못하므로, 사회의 생산적 기금은 언제나 그렇지 않았을 경우보다 얼마간 줄어들 수밖에 없다.
사실 큰 나라의 사정이 개인들의 낭비나 실책으로 크게 영향받는 일은 드물다. 어떤 사람들의 낭비나 무분별은 언제나 다른 사람들의 검소함과 바른 처신으로 충분하고도 남게 보상되기 때문이다.
낭비에 관해 말하자면, 지출을 부추기는 원리는 현재의 향락에 대한 열정이다. 이것은 때로 격렬하고 억제하기 매우 어렵지만 대체로 순간적이고 일시적일 뿐이다. 그러나 절약을 부추기는 원리는 우리의 처지를 개선하려는 욕구이다. 이 욕구는 대체로 차분하고 냉정하지만 우리가 모태에서 나올 때부터 함께하며 무덤에 들어갈 때까지 결코 우리를 떠나지 않는다. 그 두 순간을 가르는 전 기간 동안 어떤 사람이 자기 처지에 완전하고 철저하게 만족하여 어떤 종류의 변화나 개선도 바라지 않는 경우는 아마 단 한 번도 거의 없을 것이다. 재산의 증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 처지를 개선하려고 계획하고 바라는 수단이다. 그것은 가장 통속적이고 가장 명백한 수단이며, 재산을 늘리는 가장 그럴듯한 방법은 자기가 얻는 것의 일부를 규칙적으로 해마다, 혹은 어떤 특별한 기회에 절약하여 축적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출의 원리는 거의 모든 사람에게서 어떤 경우에, 그리고 어떤 사람들에게서는 거의 모든 경우에 우세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서는 그들의 생애 전체를 평균하면 검소함의 원리가 우세할 뿐만 아니라 매우 크게 우세한 듯하다.
실책에 관해 말하자면, 신중하고 성공적인 사업의 수는 어디서나 무분별하고 실패한 사업의 수보다 훨씬 많다. 파산이 잦다고 아무리 불평하더라도, 이런 불행에 빠지는 불운한 사람들은 상업과 다른 모든 종류의 사업에 종사하는 전체 수의 아주 작은 부분을 차지할 뿐이며, 아마 천 명에 한 명을 크게 넘지 않을 것이다. 파산은 아마 무고한 사람에게 닥칠 수 있는 가장 크고 가장 굴욕적인 재난일 것이다. 그러므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을 피하려고 충분히 조심한다. 사실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피하지 못한다. 어떤 사람들이 교수대를 피하지 못하듯이.
큰 나라는 사적인 낭비와 실책으로는 결코 가난해지지 않지만, 공적인 낭비와 실책으로는 때로 가난해진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공공 수입의 전부 또는 거의 전부는 비생산적 일손을 부양하는 데 쓰인다. 수가 많고 화려한 궁정, 큰 교회 기구, 큰 함대와 군대를 이루는 사람들이 그러한데, 그들은 평시에는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고, 전시에는 전쟁이 계속되는 동안에도 그들을 부양하는 비용을 보상할 만한 것을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그런 사람들은 스스로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으므로 모두 다른 사람들의 노동 생산물로 부양된다. 그러므로 그들이 불필요한 수로 늘어나면, 어느 특정한 해에 이 산출물의 매우 큰 몫을 소비하여 이듬해에 그것을 재생산해야 할 생산적 노동자를 부양하기에 충분한 것을 남기지 않을 수 있다. 그러면 이듬해의 산출물은 그 전해보다 적을 것이며, 같은 혼란이 계속된다면 셋째 해의 산출물은 둘째 해보다 더욱 적을 것이다. 국민의 여분의 수입의 일부로만 부양되어야 할 그 비생산적 일손이 그들의 수입 전체의 매우 큰 몫을 소비하여, 그로써 매우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 자본, 즉 생산적 노동을 부양하도록 정해진 기금을 잠식하게 할 수 있으며, 그러면 개인들의 모든 검소함과 바른 처신으로도 이 난폭하고 강요된 잠식이 일으킨 산출물의 낭비와 감소를 보상하지 못할 수 있다.
그러나 경험에서 드러나듯이, 이 검소함과 바른 처신은 대부분의 경우 개인들의 사적인 낭비와 실책뿐만 아니라 정부의 공적인 사치까지 보상하기에 충분하다. 자기 처지를 개선하려는 모든 사람의 한결같고 꾸준하며 끊임없는 노력은 사적인 부유함뿐만 아니라 공공의, 국민의 부유함이 원래 나오는 원리로서, 정부의 사치와 행정의 가장 큰 오류에도 불구하고 개량을 향한 사물의 자연적 진보를 유지할 만큼 강력한 경우가 많다. 그것은 동물 생명의 알려지지 않은 원리처럼, 질병뿐만 아니라 의사의 터무니없는 처방에도 불구하고 신체에 건강과 활력을 되찾아 주는 경우가 많다.
어떤 나라의 토지와 노동의 연간 산출물의 가치는 그 생산적 노동자의 수를 늘리거나, 이전에 고용되어 있던 노동자들의 생산력을 높이는 것 말고는 다른 어떤 수단으로도 늘어날 수 없다. 생산적 노동자의 수는 자본, 즉 그들을 부양하도록 정해진 기금이 늘어난 결과가 아니면 결코 크게 늘어날 수 없음이 분명하다. 같은 수의 노동자의 생산력은 노동을 쉽게 하고 줄여 주는 기계와 도구에 무언가를 더하고 개량하거나, 일을 더 적절하게 분할하고 배분한 결과가 아니면 늘어날 수 없다. 어느 경우든 거의 언제나 추가 자본이 필요하다. 어떤 사업 경영자가 노동자들에게 더 나은 기계를 갖추어 주거나 그들 사이에 일을 더 적절하게 배분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추가 자본을 통해서이다. 해야 할 일이 여러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을 때, 모든 사람을 한 가지 일에 꾸준히 고용하는 데에는 모든 사람이 때때로 일의 모든 다른 부분에 고용되는 경우보다 훨씬 큰 자본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한 나라의 서로 다른 두 시기의 상태를 비교하여 그 토지와 노동의 연간 산출물이 앞의 시기보다 뒤의 시기에 분명히 더 크다는 것, 즉 그 토지가 더 잘 경작되고 제조업이 더 많고 더 번성하며 상업이 더 넓다는 것을 발견하면, 우리는 그 두 시기 사이에 그 자본이 늘어났음에 틀림없으며, 어떤 사람들의 바른 처신으로 자본에 더해진 것이 다른 사람들의 사적인 실책이나 정부의 공적인 사치로 자본에서 빠져나간 것보다 많았음에 틀림없다고 확신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대로 조용하고 평화로운 시대에는 거의 모든 나라에서, 가장 신중하고 절약하는 정부를 누리지 못한 나라에서조차 이것이 사실이었음을 발견할 것이다. 사실 이에 대해 올바르게 판단하려면 서로 다소 멀리 떨어진 시기의 나라 상태를 비교해야 한다. 그 진보는 흔히 매우 점진적이어서, 가까운 시기들 사이에서는 개선이 감지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나라 전체가 크게 번영하고 있을 때에도 때로 일어나는 일이지만 특정한 산업 부문이나 나라의 특정한 지역이 쇠퇴하는 탓에, 전체의 부와 근로가 쇠퇴하고 있다는 의심이 흔히 생긴다.
예컨대 잉글랜드의 토지와 노동의 연간 산출물은 분명 한 세기 남짓 전 찰스 2세의 왕정복고 때보다 훨씬 크다. 내가 믿기로 지금 이것을 의심하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이 기간 동안 대중에게 얼마간 권위를 얻을 만큼 능숙하게 쓰인 책이나 소책자, 즉 국부가 빠르게 쇠퇴하고 있으며 나라의 인구가 줄고 농업이 소홀히 되고 제조업이 쇠퇴하며 상업이 망했다는 것을 증명한다고 자처하는 책이나 소책자가 출판되지 않고 5년이 지나간 적은 거의 없었다. 이런 출판물이 모두 거짓과 매수의 비참한 소산인 당파적 소책자였던 것도 아니다. 그 가운데 많은 것은 자기가 믿는 것만을 썼고 그것을 믿는다는 것 말고는 다른 이유 없이 쓴 매우 솔직하고 매우 지적인 사람들이 썼다.
또한 잉글랜드의 토지와 노동의 연간 산출물은 분명 왕정복고 때가 그보다 약 백 년 전 엘리자베스 즉위 때 그랬으리라고 가정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컸다. 또한 이 시기에 나라는 그보다 약 한 세기 전, 즉 요크 가와 랭커스터 가 사이의 분쟁이 끝날 무렵보다 개량에서 훨씬 진보해 있었다고 믿을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 그때에도 나라는 아마 노르만 정복 때보다 더 나은 상태였을 것이며, 노르만 정복 때에는 색슨 칠왕국의 혼란기보다 더 나은 상태였을 것이다. 이 이른 시기에도 나라는 분명 그 주민들이 북아메리카의 미개인과 거의 같은 상태에 있던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침공 때보다 더 개량된 나라였다.
그러나 그 각 시기에는 많은 사적·공적 낭비, 비싸고 불필요한 많은 전쟁, 연간 산출물을 생산적 일손의 부양에서 비생산적 일손의 부양으로 크게 돌리는 일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때로는 내란의 혼란 속에서 자산의 완전한 낭비와 파괴가 있어서, 부의 자연적 축적을 늦추었을 뿐만 아니라(분명 늦추었다) 그 시기가 끝날 때 나라를 시작할 때보다 더 가난하게 남겼으리라고 생각될 정도였다. 그리하여 그 모든 시기 가운데 가장 행복하고 운 좋은 시기인 왕정복고 이래의 시기에도, 만일 미리 내다볼 수 있었다면 나라의 빈곤화뿐만 아니라 완전한 파멸까지 예상되었을 혼란과 불행이 얼마나 많이 일어났던가? 런던의 대화재와 페스트, 두 차례의 네덜란드 전쟁, 혁명의 혼란, 아일랜드 전쟁, 1688년, 1701년, 1742년, 1756년의 비싼 네 차례 프랑스 전쟁, 그리고 1715년과 1745년의 두 차례 반란이 그러하다. 네 차례의 프랑스 전쟁 동안 나라는 그것이 일으킨 다른 모든 이례적인 연간 지출 말고도 1억 4,500만 파운드가 넘는 부채를 졌으므로, 전체는 2억 파운드보다 적게 계산될 수 없다. 혁명 이래 여러 차례에 걸쳐 나라의 토지와 노동의 연간 산출물 가운데 이토록 큰 몫이 이례적인 수의 비생산적 일손을 부양하는 데 쓰였다. 그러나 그 전쟁들이 이토록 큰 자본에 이런 특정한 방향을 주지 않았다면, 그 대부분은 자연히 생산적 일손을 부양하는 데 쓰였을 것이며, 그들의 노동은 자기 소비의 가치 전체를 이윤과 함께 회수했을 것이다. 나라의 토지와 노동의 연간 산출물의 가치는 그로써 해마다 상당히 늘어났을 것이며, 해마다의 증가는 이듬해의 증가를 더욱 키웠을 것이다. 더 많은 집이 지어졌을 것이고, 더 많은 토지가 개량되었을 것이며, 이전에 개량된 토지는 더 잘 경작되었을 것이다. 더 많은 제조업이 세워졌을 것이고, 이전에 세워진 제조업은 더 확대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쯤 나라의 실질적인 부와 수입이 어느 높이까지 올라갔을지는 아마 상상하기조차 그리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정부의 낭비는 분명 부와 개량을 향한 잉글랜드의 자연적 진보를 늦추었겠지만 그것을 멈추게 하지는 못했다. 그 토지와 노동의 연간 산출물은 의심할 여지 없이 현재가 왕정복고 때나 혁명 때보다 훨씬 크다. 그러므로 해마다 이 토지를 경작하고 이 노동을 부양하는 데 쓰이는 자본도 훨씬 클 수밖에 없다. 정부의 온갖 수탈 한가운데서 이 자본은 개인들의 사적인 검소함과 바른 처신, 즉 자기 처지를 개선하려는 그들의 보편적이고 지속적이며 끊임없는 노력으로 조용히 점차 축적되어 왔다. 법의 보호를 받고 자유에 의해 가장 유리한 방식으로 발휘되도록 허용된 이 노력이야말로 거의 모든 과거 시대에 부유함과 개량을 향한 잉글랜드의 진보를 유지해 왔으며, 바라건대 모든 미래 시대에도 그렇게 할 것이다. 그러나 잉글랜드는 매우 절약하는 정부의 축복을 받은 적이 결코 없었듯이, 절약이 그 주민들의 특징적인 미덕이었던 적도 결코 없었다. 그러므로 국왕과 대신들이 사치 금지법으로나 외국 사치품의 수입을 금지함으로써 개인들의 살림살이를 감시하고 그들의 지출을 억제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극도의 무례이자 주제넘음이다. 그들 자신이야말로 언제나, 그리고 예외 없이 사회에서 가장 큰 낭비자이다. 그들이 자기 지출이나 잘 살핀다면 개인들에게는 안심하고 그들 자신의 지출을 맡겨도 된다. 그들 자신의 사치가 국가를 파멸시키지 않는다면, 신민의 사치는 결코 국가를 파멸시키지 않을 것이다.
검소함이 공공 자본을 늘리고 낭비가 그것을 줄이듯이, 축적하지도 잠식하지도 않고 지출이 수입과 꼭 같은 사람들의 처신은 그것을 늘리지도 줄이지도 않는다. 그러나 어떤 지출 방식은 다른 방식보다 공공 부유함의 성장에 더 이바지하는 듯하다.
개인의 수입은 즉시 소비되어 하루의 지출이 다른 날의 지출을 덜어 주지도 뒷받침하지도 못하는 것들에 지출될 수도 있고, 더 오래가서 축적될 수 있으며 매일의 지출이 그가 원하는 대로 이튿날 지출의 효과를 덜어 주거나 뒷받침하고 높일 수 있는 것들에 지출될 수도 있다. 예컨대 재산가는 사치스럽고 호화로운 식탁에, 그리고 많은 수의 가사 하인과 많은 개와 말을 부양하는 데 수입을 지출할 수도 있다. 혹은 검소한 식탁과 적은 수행원으로 만족하고, 그 대부분을 자기 집이나 시골 별장을 꾸미는 데, 유용하거나 장식적인 건물에, 유용하거나 장식적인 가구에, 책과 조각상과 그림을 모으는 데, 혹은 더 하찮은 것들, 즉 보석, 장난감, 여러 종류의 정교한 장신구에, 혹은 무엇보다 하찮게도 몇 해 전에 죽은 어떤 대군주의 총신이자 대신처럼 좋은 옷을 잔뜩 모으는 데 쓸 수도 있다. 같은 재산을 가진 두 사람이 수입을 한 사람은 주로 앞의 방식으로, 다른 사람은 주로 뒤의 방식으로 지출한다면, 주로 내구재에 지출한 사람의 호화로움은 끊임없이 늘어날 것이다. 매일의 지출이 이튿날 지출의 효과를 뒷받침하고 높이는 데 무언가를 보탤 것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다른 사람의 호화로움은 그 기간이 끝날 때에도 시작할 때보다 더 크지 않을 것이다. 또한 그 기간이 끝날 때 앞의 사람이 둘 가운데 더 부유한 사람일 것이다. 그는 어떤 종류든 재화의 재고를 가지고 있을 것이며, 그것은 그것에 든 비용만큼의 가치는 없을지 몰라도 언제나 얼마간의 가치는 있을 것이다. 뒤의 사람의 지출은 아무런 흔적도 남지 않을 것이며, 10년이나 20년 동안의 낭비의 효과는 마치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완전히 사라질 것이다.
한 지출 방식이 다른 방식보다 개인의 부유함에 더 유리하듯이, 국민의 부유함에도 더 유리하다. 부자들의 집과 가구와 의복은 얼마 지나면 하층과 중간 계층 사람들에게 유용해진다. 윗사람들이 그것에 싫증을 내면 그들이 그것을 살 수 있으며, 이 지출 방식이 재산가들 사이에 보편화되면 국민 전체의 일반적인 생활 편의가 이렇게 점차 개선된다. 오랫동안 부유했던 나라에서는 하층 계급 사람들이 완벽하게 좋고 온전한 집과 가구를 가지고 있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는데, 그 집은 그들이 살도록 지어진 것일 수 없고 그 가구도 그들이 쓰도록 만들어진 것일 수 없다. 한때 시모어(Seymour) 가문의 저택이었던 곳이 지금은 바스(Bath) 가도의 여관이다. 영국의 제임스 1세(James I)의 신혼 침대는 그의 왕비가 군주가 군주에게 할 만한 선물로 덴마크에서 가져온 것인데, 몇 해 전에는 던펌린(Dunfermline)의 한 선술집의 장식품이었다. 오랫동안 정체되었거나 다소 쇠퇴한 몇몇 옛 도시에서는 현재의 주민들을 위해 지어졌을 법한 집을 단 한 채도 찾아보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 또한 그런 집에 들어가 보면 흔히 낡았지만 훌륭하고 아직도 쓰기에 매우 알맞은 가구를 많이 보게 되는데, 그것 역시 그들을 위해 만들어졌을 리 없다. 고귀한 궁전, 웅장한 별장, 책과 조각상과 그림과 그 밖의 진귀품의 큰 수집품은 흔히 그것이 있는 근방뿐만 아니라 그것이 속한 나라 전체의 장식이자 영예이다. 베르사유는 프랑스의, 스토(Stowe)와 윌턴(Wilton)은 잉글랜드의 장식이자 영예이다. 이탈리아는 그것을 낳은 부가 쇠퇴했고, 그것을 구상한 천재가 아마 같은 일거리가 없어서 소멸한 듯한데도, 그것이 가진 이런 종류의 기념물의 수로 아직도 일종의 숭배를 받고 있다.
또한 내구재에 투하되는 지출은 축적뿐만 아니라 검소함에도 유리하다. 어떤 사람이 언제든 그것에 지나치게 지출했다면, 그는 공공의 비난을 받지 않고 쉽게 고칠 수 있다. 하인의 수를 크게 줄이는 것, 식탁을 대단한 사치에서 대단한 검소함으로 고치는 것, 일단 마차를 갖춘 뒤에 그것을 처분하는 것은 이웃의 눈을 피할 수 없는 변화이며, 이전의 잘못된 처신을 얼마간 인정하는 것을 뜻한다고 여겨진다. 그러므로 일단 불운하게도 이런 종류의 지출에 너무 멀리 나선 사람들 가운데 파멸과 파산이 강요하기 전에 고칠 용기를 갖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언제든 건축이나 가구나 책이나 그림에 지나치게 지출했다면, 그가 처신을 바꾼다고 해서 아무런 무분별도 추론되지 않는다. 이것들은 이전의 지출 때문에 더 이상의 지출이 흔히 불필요해지는 것들이며, 어떤 사람이 갑자기 멈추면 그는 재산을 넘어섰기 때문이 아니라 자기 취향을 충족했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내구재에 투하되는 지출은 보통 가장 사치스러운 접대에 쓰이는 지출보다 더 많은 사람을 부양한다. 큰 잔치에서 때로 차려지는 2, 3백 파운드 무게의 음식 가운데 아마 절반은 쓰레기 더미에 버려지며, 언제나 많은 것이 낭비되고 함부로 쓰인다. 그러나 이 접대 비용이 석공, 목수, 실내 장식공, 기계공 따위를 일하게 하는 데 쓰였다면, 같은 가치의 식량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분배되었을 것이며, 그들은 그것을 1페니어치, 1파운드 무게씩 사서 단 1온스도 잃거나 버리지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한 방식에서는 이 지출이 생산적 일손을 부양하고, 다른 방식에서는 비생산적 일손을 부양한다. 그러므로 한 방식에서는 나라의 토지와 노동의 연간 산출물의 교환가치를 늘리고, 다른 방식에서는 늘리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이 모든 것으로 한 종류의 지출이 언제나 다른 종류의 지출보다 더 너그럽고 관대한 정신을 나타낸다는 뜻으로 이해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재산가가 수입을 주로 접대에 지출할 때, 그는 그 대부분을 친구와 동료들과 나눈다. 그러나 그것을 그런 내구재를 사는 데 쓸 때에는 흔히 그 전부를 자기 자신에게 쓰며, 등가물 없이는 누구에게도 아무것도 주지 않는다. 그러므로 뒤의 종류의 지출은, 특히 하찮은 대상, 즉 의복과 가구의 작은 장식품, 보석, 장신구, 싸구려 겉치레에 향할 때에는 흔히 하찮은 성품뿐만 아니라 비열하고 이기적인 성품을 나타낸다. 내가 뜻하는 것은 다만, 한 종류의 지출은 언제나 값진 상품의 얼마간의 축적을 일으키므로, 사적인 검소함에, 따라서 공공 자본의 증가에 더 유리하므로, 그리고 비생산적 일손보다는 생산적 일손을 부양하므로, 다른 종류의 지출보다 공공 부유함의 성장에 더 이바지한다는 것이다.